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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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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일론 머스크의 생애를 알아봤는데요, 정작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에 대해서는 인상적인 비평만 있고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마 저와 같은 분들이 적지 않으실 거라 생각하고, 오늘은 간단히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2024년 대선까지 왔는지 알아볼게요.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는 미국의 부동산 개발자, 예능에 나오고 심지어 레슬링 무대에 오르는 TV 스타,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생애를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시기별로 알아볼게요.


1. 유년기와 가족 배경

  • 출생: 1946년 독일계 이민자 후손인 프레드 트럼프(Fred Trump)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메리 앤 맥클라우드(Mary Anne MacLeod)의 사이에서 뉴욕 퀸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퀸스의 자메이카 에스테이츠(Jamaica Estates)라는  지역은 중상류층 지역이라고 합니다.
  • 가족: 5남매 중 네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뉴욕에서 성공적인 부동산 개발자로 활동하며 뉴욕시 외곽의 저소득층과 중산층 주택 개발로 큰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가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에서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도널드는 어머니로부터 강한 신앙심과 자기 절제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형제들 중 큰형이었던 프레디 트럼프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프레디의 죽음은 도널드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됩니다.
  • 교육: 도널드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행동을 보여, 부모님과 교사들에게 골칫덩이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퀸스에 있는 키웨스트(Kew-Forest School)라는 사립학교에 다니던 도널드는 청소년기에 말썽을 부려 13세 때 뉴욕 군사학교(New York Military Academy)에 보내졌습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와튼스쿨(Wharton School)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 초기 사업 활동

  •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부동산 회사(당시 이름은 Elizabeth Trump & Son)에 합류했습니다.
  • 뉴욕시와 브루클린 등지의 중산층 아파트를 관리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 1971년, 회사를 자신의 이름을 딴 **"트럼프 조직(Trump Organization)"**으로 개명하고 본격적으로 맨해튼의 고급 부동산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 성공적인 프로젝트:
    • 그랜드 하얏트 호텔(Grand Hyatt Hotel) 개발. 1970년대 후반, 뉴욕의 Commodore Hotel을 현대화하여 Grand Hyatt로 재개발하며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트럼프가 맨해튼 부동산 시장에서 중요한 인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트럼프 타워(Trump Tower) 건설.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위치한 초호화 복합건물로, 트럼프의 대표작입니다. 1983년 완공된 이 건물은 고급 아파트와 상업 공간을 포함하며 그의 상징적인 성공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 아파트, 카지노, 호텔 프로젝트. 트럼프는 1980~90년대에 걸쳐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 여러 카지노를 개발했습니다.

 


3. TV 스타와 유명 인사로서의 도약

  • 1980~1990년대에는 화려한 사업 스타일과 유명 인사로서의 삶으로 주목받았습니다.
  • 그러나 1990년대 초 경제 침체로 인해 몇 차례 파산 신청을 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 2004년, NBC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의 진행자로 등장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경영 과제를 주며 우승자를 선정했고, 모두가 아는 유명한 대사 "You're fired!"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쇼는 트럼프 브랜드의 대중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4. 정치 입문과 대통령직

  • 정치 입문: 트럼프는 갑자기 정치에 뛰어든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젊은 시절부터 미국의 경제와 외교 문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 정책, 무역, 외교 문제에 대해 강한 의견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일본 및 기타 국가와의 무역 적자를 강하게 비판하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었습니다. 1988년에는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의 러닝메이트로 트럼프의 이름이 잠깐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 정당간 이동: 트럼프는 공화당, 민주당, 개혁당, 무소속 등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탐색하며 특정 정당에 고정되지 않았습니다. 1999년에는 개혁당 후보로 대선 출마를 고려했으나 실제로 출마하지는 않았습니다.
  • 정치적 멘토: 로이 콘은 트럼프의 초기 변호사이자 멘토로, 1970~80년대에 트럼프에게 공격적인 협상 기술과 언론 다루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매카시즘 시절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의 보좌관이었으며, 정치적 전략과 공세적인 태도를 트럼프에게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정치적 의견 표출: 2000년대 초반, 트럼프는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자주 밝혔습니다. 그는 미국의 경제 정책, 중국과의 무역 관계, 이라크 전쟁 등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단순히 사업가를 넘어 국가 문제에 관여하는 인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죠. 2008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는 오바마의 출생지를 둘러싼 논란을 앞장서 제기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합니다. 이는 보수층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고, 트럼프가 공화당 내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2016년 대선 승리: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트럼프는 현실 정당 정치 경험이 전무했지만, 미국 중산층과 보수층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빠르게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 아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특히 미국의 백인 남성 유권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 대통령으로서의 주요 정책: 그의 정책은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태도와 연결됩니다. 2017년 세제개혁법을 통해 개인 및 법인세율을 크게 낮추고 산업 전반에서 규제를 대폭 줄이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금융, 제조업 분야에서 기업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 제조(Made in America)"를 강조하며 제조업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는 그의 지지계층에게 크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지적재산권 침해를 비판하며 고율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또한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여 불법 이민과 마약 밀수를 차단하려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이민세관단속국(ICE)을 통해 불법 체류자 단속을 강화했습니다. 중동정책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중동 평화 협정(아브라함 협정) 체결을 통해 이스라엘과 여러 아랍 국가간 외교 관계 정상화를 중재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국방 예산을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나토(NATO)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며 미국의 군사적 기여를 줄이려 했습니다. 여기에 물론 우리나라도 포함되죠. 에너지정책에 있어서도 인상적인데, 파리 기후협정에서 탈퇴하며 미국의 에너지 산업 보호를 주장하고 석탄, 석유, 천연가스 생산 확대를 장려하며 에너지 독립을 목표로 했습니다. 

5. 재선 패배 이후 

  • 대선 결과 불복: 조 바이든에게 패배했지만, 2020년 대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선거 결과에 불복했습니다. 과격하고 비상식적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주장은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법적 문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을 습격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가 집회 연설에서 "싸우지 않으면 나라를 잃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폭동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죠. 이 "내란 선동" 혐의는 상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20년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한 시도와 관련해서도 여러 법적 조사에 직면했고, 기밀 문서 반출 사건도 있었습니다.
  • 공화당 내 지지 강화: 트럼프는 패배 후에도 공화당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았습니다. 그의 정책과 "미국 우선주의"는 공화당의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고, 공화당 후보들은 트럼프의 지지 없이는 선거에 이기기 어렵다는 평가도 도 있었습니다.
  • 2024년 대선 출마: 트럼프는 2022년 11월, 플로리다에서 열린 연설에서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유지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했습니다. 

오늘은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른바 "세계 대통령"이라고까지 말하던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트럼프가 된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이어질 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세계 여러 지도자들이 쉽고 강렬한 메시지를 무기로 적대감과 분열을 활용하며 지지자를 규합해 영향력을 갖는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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